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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 故신인영 선생의 어머니 고봉희 여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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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신인영 선생의 어머니 고봉희 여사 별세

평생 기다림의 세월을 살다 가신 민중들의 어머니

기자 발행시간 2002-11-08 20:21:05 최종수정 2002-11-08 20:21:05
故신인영 선생의 어머니 고봉희 여사 별세
ⓒ민중의소리ⓒ민중의소리

故신인영 선생의 어머니 고봉희 여사가 8일 새벽 2시에 강남성모병원에서 95세의 나이로 노환과 고관절로 별세하였다.

고봉희 여사는 평생 결코 쉽지 않은 한 생을 살아왔다.
고봉희 여사의 아들 신인영 선생은 1967년 체포되어 1998년 석방된 꼬박 31년을 감옥에서 보낸 비전향장기수였다. 그 오랜 시간 신인영 선생의 옥바라지를 하시고 사셨으며, 큰아들의 출소를 위한 노력 끝에 상봉해 2년정도 같이 사시다 2000년 9월 다시 아들을 북으로 보내고 이별의 시간을 보내시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사셨다. 특히 신인영 선생이 오랜 감옥 생활로 인해 얻은 골수암은 어머니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장례식장의 고봉희 여사의 사위는 "다른 사람들 같은면 호상이라고 할 것이다. 95세까지 사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랜 고통과 한을 안고 사셨기에 결코 호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애통한 마음을 표현했다. 특히 금강산에 갔을 때 매형을 만나고 싶었으나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고 하였다.

장례식장을 찾은 진관 스님은 "95년 동안 분단의 아픔 속에서 사셨다. 고봉희 여사 같은 비극적인 아픔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되겠다. 분단의 아픔이 이제는 통일로 승화되기 바란다. 95년 동안 끈질긴 여성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참고 견디는 모습을 보이면서 분단 조국이 통일이 되는데 모든 여성에게 귀감이 되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오종렬 의장은 "자녀를 조국통일 애국 전사로 두시고 오랜 세월 아들을 감옥에 두고 애태우시던 어머니가 꿈에 그리던 아들을 품에 안으셨는데, 아들을 자신의 신념의 고향으로 떠나 보내셨다. 새로운 이별의 세월을 2년 넘게 살아오시다가 한 많은 생을 마치셨다. 신인영 선생 대신 어머니를 모신다고 했는데 그 일을 제대로 다하지 못했다. 거룩한 어머니가 저 세상으로 가시고 우리는 남았다. 죄스러움을 씻는 건 어머니가 평생 걸으셨던 고생의 길이 다음 세대에겐 꽃 길이 되게 하겠다. 어머님은 비록 가셨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내려다 보시고 힘이 되어 주실거다"라고 말했다.

통일 광장의 권낙기 선생은 "장기수 송환 추진위원회에서 2000년 선생들의 북송을 준비하면서 신인영 선생의 경우가 가장 고민되었다. 남쪽에는 90이 넘은 노모와 형제자매들이 있고 북쪽에는 부인과 자녀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가시라고 했다. 6.15선언도 발표 됐으니 오래 헤어지지 못 할 것이다. 3년 정도 기다리면 만나지 않겠냐고 말했다. 신인영 선생은 '남은 동지들에게 어머님을 부탁한다'고 했다. 한 생명에 대한 미련보다 민중의 비극이 서럽다. 개인적으로 오늘 오전 8.15행사 참여로 재판을 받고 장례식장으로 와야하는 현실이 아픔이나 원한이 아니라 반드시 통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고 말했다.

고봉희 여사의 딸 신선영씨는 "어머니는 평생 기다림 속에서 사셨다. 30년이 넘는 세월 큰 아들을 기다리셨고, 2년간 아들과 꿈 같은 생활을 하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셨다. 어머니 어린 시절에는 독립군이시던 아버지를 기다리셨다. 돌아가시기 전 소원을 물어보니 큰아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아들의 죽음을 맘속으로는 인정하지 않으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인영 선생이 돌아가신 사실을 가족들은 고봉희 여사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쇠약하신 몸 충격 받아 약해지실까 봐서다. 그때 신문과 TV에 신인영 선생의 부고 소식이 실렸는데 고봉희 여사가 보실까 싶어 TV와 전화기 선을 끊고 고장이 났다고 했다. 전화기는 신문사와 방송사등에서 취재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

신선영씨는 북에 있는 신인영 선생의 가족소식을 알고 싶다며 안타까워했다.

같은 땅에 살고 있는데 얼굴은 못 볼지언정 소식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어쩌면 신인영 선생과 고봉희 여사는 지금쯤 만나고 있을지 모른다. 두분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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